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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법문 하 중에서 육조스님
 관리자  | 2007·12·23 22:05 | HIT : 14,722 | VOTE : 3,917
백일법문 하 중에서
                              [육조스님]

보통 삼론종. 법상종. 천태종. 화엄종이라고 하면 교가(敎家)이론을 총망라한 것인데 이 모두는 중도(中道)에 입각하여 법을 설한 것입니다. 따라서 중도를 내놓고는 각 종(宗)은 성립되지 못할 뿐 아니라 중동의 이론이 불교교리의 최고원리라는 것은 누구도 의심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교외별전(敎外別傳)을 주장하는 선종(禪宗)에서는 무엇을 근본으로 삼았는가. 선종도 불교에 속하는 이상 중도를 근본으로 삼았느냐가 문제가 됩니다. 이를 밝히기 위해서는 역대 조사스님들의 어록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먼저 육조(六祖)스님의 어록인(육조단경(六祖壇經)을 보면 중도를 근본으로 삼았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육조스님이 돌아가실 임시에 하신 법문을 살펴 봅시다. 조사께서 어느날 문인(門人)인 법해(法海).지성(志誠).법달(法達).신회(神會).지상(智常).지통(智通).지철(志徹).지도(祉).법진(法珍).법여(法如)등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다른 사람들과 달라서 내가 죽은 후에는 각각 한 지방의 스승이 될 것이니 내가 이제 너희들에게 설법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리니 내 근본 종지를 잃어 버리지 않게 하여라.
먼저 삼과(三科)법문과 동용(動用)36대(三十六對)를 들 것이니 드나듬에 양변을 떠나 일체법을 설할 때 자성을 떠나지 마라. 홀연히 어떤 사람이 너희들에게 법을 묻거든 말함에 모두 쌍(雙)으로 하여 모두 대법(對法)을 취하며 오고 감이 서로 원인이 되어도 마침내는 두 법을 다 없이 하여 다시 갈 곳이 없도록 하라. 삼과법문이란 음(陰).계(界).입(入)을 말한다. 음(陰)이란 곧 오음(五陰)으로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을 말하고, 입(入)은12입(十二入)으로서 외육진(外六塵)안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과 내육문(內六門)인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가 그것이다. 계(界)는 18계(十八界)로서 6진(六塵)6문(六門)육식(六識)이다. 자성(自性)이 능히 일체만법을 포함하는 것을 함장식(含藏識)이라
하는데 만약 사량(思量)을 일으킬 것 같으면 곧 전식(轉識)이다. 육식(六識)을 일으켜 6문(六門)으로 나아가서 여섯 객관(六塵)을 보니 이와 같이 18계가 모두 자성을 따라 작용을 일으킨다. 만약 자성이 삿되면 열여덟 가지 나쁜 것을 일으키고 자성이 올바르면 열여덟 가지 올바름을 일으킨다.
만약 아갛게 작용하면, 곧 중생의 작용이요, 착하게 작용하면 곧 부처의 작용이다.작용(作用)은 무엇을 근거로 하여 이루어지는가. 자성(自性)으로 말미암아 대법(對法)이 있다. 외경(外境)의 물질세계에 다섯 상대(五對)가 있으니 하늘과 땅이 상대요 음과 양이 상대요, 물과 불이 상대이다. 이것이 다섯 상대(五對)이다.
법상(法相)의 말에 열 두 상대가 있으니 말.법(語法)이 상대요, 유.무(有無)가 상대요, 유색.무색(有色無色)이 상대요, 유상.무상(有相無相)이 상대요, 유루, 무루(有漏無漏)가 상대요, 색.공(色空)이 상대요, 동정(動靜)이 상대요, 청탁(淸濁)이 상대요, 범성(凡聖)이 상대요, 승속(僧俗)이 상대요, 노소(老少)가 상대요, 대소(大小)가 상대이다. 이것이 열두상대(十二對)이다.
자성이 작용을 일으키는 데 열아홉 상대가 있다.
장단(長短)이 상대요, 사정(邪正)이 상대요, 치혜(痴慧)가 상대요, 우지(愚智)가 상대요, 난정(亂定)이 상대요, 자독(慈毒)이 상대요, 계비(戒非)가 상대요 직곡(直曲)이 상대요, 번뇌와 보리가 상대요, 상.무상(常無常)이 상대요, 비해(悲害)가 상대요, 희진(喜瞋)이 상대요, 사취(捨取)가 상대요, 진퇴(進退)가 상대요, 생멸(生滅)이 상대요, 법신(法身)과 육신(色身)이 상대요, 화신(化身)과 보신(報身)이 상대이니 이것이 열아홉 상대(十九對)이니라."
조사께서 말씀하셨다.
"이 36대법(三六對法)을 잘 쓸 것 같으면 도(道)가 일체경법(一切經法)에 관통하고 출입할 때 양변을 떠나 버려 자성 작용과 여러 사람의 말에 밖으로 상(相)은 있지만 상을 떠나고 안으로 공(空)은 있지만 공을 떠난다. 만약 상(相)에 집착할 것 같으면 곧 사견(邪見)을 기르게 된다. 만약 사람이 너희들에게 뜻을 물을 때 유(有)를 물으면 무(無)로써 대하고 무(無)를 물으면 유(有)로써 대답하며 범(凡)을 물으면 성(聖)으로써 대답하고 성(聖)을 물으면 범(凡)으로써 대답하여 이도(二道)가 서로 인(因)해서 중도(中道)가 성립된다. 한 번 물으면 한 번 대답하고 나머지 물음도 한결같이 이렇게만 하면 곧 이치를 잃지 않으리라.
가령 어떤 사람이 묻되 '어떤 것을 어두움이라 합니까'하면'밝음은 인(因)이 되고 어두움은 연(緣)이 되어 밝음이 없어지면 곧 어두움이다'라고 대답하여 밝음으로써어두움을 나타내고 어두움으로써 밝음을 나타내서 오고 감이 서로 원인이 되게 하여 중도의 진리를 이루게 해야 한다. 나머지 물음도 다 이와 같이 할 것이다. 너희들이 나중에 법을 전함에 있어서도 이렇게 하여 번갈아 서로 가르쳐 줌으로써종지(宗旨)를 잃지 말 것이니라. "육조스님을 모시고 있던 스님 중에서 남악 회양(南嶽懷讓)스님이나 청원 행사(靑原行思)스님은 딴 곳에 나가서 법을 펴고 있었지만 법해(法海)스님 등은 육조스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모시고 있었습니다. 스님을 모시고 있는 스님들 가운데 수승한 10대제자를 모아 놓고 무문자설(無問自設)로 이렇게 유촉하였습니다.
본래 수법제자(受法弟子)같으면 이러한 것을 모를 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또 한번 말씀하신 것은 비록 안다고 해도 다시 한 번 강조하기 위해서이고, 또 그 당시 사람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후세 중생들을 위해서입니다. 앞으로 육조스님이 하고 싶은 말씀이 선종에 있어서 근본원리이기 때문에 특별히 불러서 유촉한 법문입니다.
언제든지 설법을 할 때는 양변을 떠난 중도(中道)에 입각해서 설법을 하되 자성(自性)을 떠나서는 안됩니다. 자성이란 불성(佛性)을 말하는데 불성이란 비유비무(非有非無)이고 역유역무(亦有亦無)한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누가 유(有)로 물으면 무(無)로 대답하고 무(無)로 물으면 유(有)로 대답해야 합니다. 유(有)란 스스로가 유가 아니고 무(無)가 있기 때문에 유(有)이고 유(有)가 있기 때문에 무(無)가 있습니다. 따라서 유를 떠나서 무가 없고 무를 떠나서 유가 없습니다. 이것을'오고감이 서로 원인이 된다(來去相因)'고 합니다. 그리고 구경에 두 법을 모두 버리라고 한 것은 다시 말하면 무를 떠나서 유가 없고 유를 떠나서 무가 없다면 이것은 생멸법(生滅法)이지 절대법(絶對法)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두 법을 다 버려야 됩니다. 생멸법을 버려서 다시 갈 곳을 없게 해야 합니다.
결국 양변을 여의는 것을 역설하기 위해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누가 법문을 묻든지 간에 반드시 양변을 여윈 중도에 입각해서 법을 설해야 되지 그렇지 않을 것 같으면 근본 불법이 아닐 뿐 아니라 육조의 아손이 아닙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교의 별전이라고 하는 조계 선종(曹溪禪宗)의 근본 입장도 중도에 서 있지 중도를 떠나서는 조계선종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조계선종을 바로 알려면 중도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천태종이나 삼론종이나 법상종이나 그 근본은 중도에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첨가해서 설명할 것이 있는데 육조스님이 의발(衣鉢)을 전한 부분에 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혹자는 행사스님에게 육조스님의 의발을 전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잘못 본 것입니다. 그 부분을 [대장경]에서 살펴 보겠습니다.
그전에는 옷과 법(依法)을 함께 실행하여 스승과 제자가 주고 받았으니 옷을 가지고 믿음(信)을 표시했다. 내가 이제 사람을 얻었는데 어찌 믿지 아니함을 걱정하겠느냐. 내가 옷을 받은 이래로 고생을 많이 했다. 하물며 후대에서랴, 반드시 경쟁이 많을 것이다. 옷은 산문(山門)에 두고 너는 마땅히 각 지역에 나누어 교화하여 이 법을 단절케 하지 마라.
이 대목은 전등록 청원행사(靑原行思)장에 나오는 것입니다.
즉, 6조대사 이전에는 옷과 법(依法)을 서로서로 쌍행해서 전해 내려왔는데 이것은 옷을 가지고 신(信)을 표시한 것이고 법은 마음을 전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사람을 얻었는데 어찌 믿지 아니함을 겁낼 것이 있겠는가. '즉 네가 지금 법을 성취하였는데 그 신(信)을 표시함에 있어서 옷은 필요가 없다 하였으니 이것은 옷을 전할 필요가 없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뿐아니라 내가 옷을 전해 받은 이래로 옷을 서로 뺏으려고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하물며 후대에는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즉 옷 때문에 싸움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옷은 조계산에 그대로 두고 너희는 마땅히 딴 곳으로 가서 교화를 하라'며 이 법을 단절치 않게 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여기서 옷은'산문에 두라(留鎭山門)'함은 조계산에 그대로 두라는 뜻입니다. 또[육조단경]에서 인용해 보겠습니다.
법해(法海)상좌가 재배하고 여쭈었다. "스님께서 입멸하신 후에 옷과 법은 마땅히 어떤 사람에게 맡기십니까."
"내가 대범사에서 설법한 이래 지금에 이르도록 기록하여 유통되는 것이 있으니 이것을 [법보단경]이라 한다. 너희들이 수호하여 번갈아 전해 주고 모든 중생을 제도하되 다만 이 단경에 의지하여 설하면 이것이 정법(正法)이다. 지금 너희들을 위해 법을 설하고 옷은 전해 주지 않는다. 너희들의 신근(信根)이 순숙(淳熟)하기 때문에 결정코 의심이 없으며 큰 일을 감당할 만하다. 그러므로 이전 조사인 달마대사께서 붙이신 게송의 뜻에 의거하여 옷은 전하지 않을 것이다. "하시고 게송을 말씀하셨다.
내가 본래 이 땅에 와서법을 전하고 어리석은 중생을 구하니한꼿에 다섯 잎 피어열매가 저절로 이루리라. 이것뿐만 아니라 육조스님이 옷을 조계산에 두고 전하지 않은 것을 가지고 글을 지은 것이 있는데 이것이 유명한 불의 명(佛依銘)입니다.여기의 첫머리에'부처님 말씀은 행하지 않고 옷이 싸움의 근본이 된다(佛言不行佛衣乃爭)'그래서 옷을 전하지 아니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현종(玄宗)초 육조 스님이 돌아가신 뒤 얼마 안되어 현종이 육조스님의 의발을 청해서 궁중에 모셔 놓았는데 그 아들인 숙종이 죽고 난 뒤에도 옷을 조계산에 돌려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숙종 아들 대종(大宗)이 꿈을 꾸엇는데 육조스님이 의발을 조계산으로 도로 돌려 보내달라고 현몽을 했습니다. 그래서 영태(永泰)원년 5월 5일에 조칙을 내려 조계산에 돌려 보냈다는 대목이 육조스님의 비문에 다음과 같이 나옵니다.
짐이 꿈에 혜능대사를 보았는데 전해 내려온 옷 가사를 조계로 보내달라고 청하니 내가 진국 대장군 유순경을 시켜서 받들어 모시고 보내며 이것은 나라의 국보이니 본사에게 여법하게 잘 보관하라 하였다.
이러한 여러 가지의 증거를 보아서 육조 스님이 옷을 전하지 안했다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마조(마조도일(馬祖道一)스님이야기  관리자 07·12·23 14614 3922
  청담스님 일체 유심 (一切唯心)  관리자 07·12·23 15359 3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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