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건>
① 중수와 보수
전해오는 가장 오래된 기록인 고금창기(불국사 창건에 관한 최고의 기록)는 문헌적인 근거가 약해 불국사가 일정 기간에 창건되기 보다는 긴 세월동안 여러세력들에 의해 점차적으로 완성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오늘날의 일반적 견해이다.

이러한 불국사의 거대가람으로서의 위용은 1593년 5월 의병과 승군의 활동으로 많은 피해를 입고 복수심에 사로잡힌 왜군의 방화와 파괴등으로 큰 피해를 입어 2,000여 칸의 대가람이 전소되는 고난을 겪게 되었다. 이후 전란의 피해가 복구되면서 불국사도 국가의 지원 및 스님과 신도들의 노력에 의해 1604년(선조 37)경부터 복구와 중건이 시작되어 1805년(순조 5)까지 40여 차례에 걸쳐 부분적인 중수(重修)가 이루어졌으며 1805년 비로전 중수를 끝으로 중수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이후 조선 후기 국운(國運)의 쇠퇴와 더불어 사운(寺運)도 쇠퇴하여 많은 건물이 파손되고 도난당하는 비운을 겪게 되었다.

②근세 복원
일제강점기인 1924년 대규모의 개수공사를 실시하여 다보탑의 해체보수, 법당의 중수 등을 실시하였는데 이때 다보탑 속에 있던 사리장치(舍利藏置)가 행방불명되었고 공사와중에 유물의 완벽한 복원과 보존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은 일제의 문화정책의 전시물로서 수난을 겪었다.

8 ·15광복 후인 1966년 석가탑의 해체복원 등 부분적 보수가 있었다가 1969년 불국사 복원위원회가 구성되고 1970년 2월 공사에 착수, 1973년 6월 대역사(大役事)를 끝마쳤다. 이 공사로 주춧돌과 빈터만 남아 있던 무설전 · 관음전 · 비로전 · 경루(經樓) · 회랑(廻廊) 등이 복원되었고, 대웅전 · 극락전 · 범영루(泛影樓) · 자하문(紫霞門) 등이 새롭게 단장되었다.

1910년대 범영루
1910년 불국사 전경